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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서양의 문화'란 과목에서 '콜럼버스의 교환'을 공부하던 중, 작년에 미친듯이 읽었던 <총균쇠>가 떠올랐다. 세계의 경제적 격차가 총균쇠에서 비롯됐다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이전 <제 3의 침팬지>와 비슷한 내용이었기에 순조롭게 읽었지만, 독후감 쓸 땐 요약하느라 힘들었지... 참 재밌는 책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는데, 산업혁명은 왜 유럽에서 먼저 일어났을까? 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무차별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는가? 왜 먼저 문명을 이륙한 중국보다 유럽이 더 발전 속도가 빠른가? 등등- 이 모든 불평등의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재레드는 이 불평등의 근원을 '자연환경의 차이'라 설명한다.
대륙간의 불균형.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환경의 차이라고 재레드는 말한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서 현재의 불균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주요 농작물과 가축은 거의 유라시아 대륙에서 발생했다. 구대륙과 신대륙 간의 콜럼버스의 교환만 봐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작물과 동물은 대부분 유라시아 대륙(구대륙)에서 아메리카 대륙(신대륙)로 넘어간 것들이다.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넘어오는 것은 파인애플, 감자, 칠면조, 기그니피그, 라마 등이다.
이중 구대륙의 생물은 신대륙에서 생태계를 지배하며 크게 번창한 것에 반해, 신대륙의 생물은 구대륙에서 극소수만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구대륙 작물들은 신대륙에 비해 품종이 좋아 생산이 용이하며, 농업발달을 쉽게 이륙했다. 농업의 발달은 식량 증가 뿐만 아니라 인구를 증가시키고, 사람이 모이니 도시와 국가가 발전한다. 이에 잉여 농작물이 생기면서, 농업이외의 전문직이 생기고 계급의 격차가 벌어진다. 이런 전문인들은 정치조직과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문명의 발달을 더욱 가속화 시킨다. 아울러 동물을 사육하게 되면서 생활이 편해지는 한편, 다양한 질병이 발생한다. 특히 전염병은 많은 사람들을 사살했지만,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면역력을 얻는다.
반면 신대륙의 경우, 환경적으로 가축으로 쓸 만한 동물이 없기에, 그와 관련된 질병이 없으며, 아울러 면역력도 없다. 이때 콜럼버스의 교환에서 질병도 옮기게 되는데, 몇 년 안되어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몰살당했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사상자가 더 많았다고 하니, 유럽인들의 최강 무기는 질병이 아닌가 싶다. 한편 좌우로 넓게 퍼지고, 큰 장애물이 없는 유라시아 대륙의 지리적 개방성은 문명의 교류를 돕는다. 섬으로 동떨어진 오세아니아 대륙은 물론이고, 세로로 쭉 퍼진 신대륙들은 산맥과 사막, 바다의 장벽으로 유라시아 문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같은 대륙사이에서도 기후의 차이(세로)가 심해 물자교역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지리적 요인은 어느 대륙이 전쟁이나 침략 쪽으로 더 빨리 발전하는지도 결정한다. 중국의 경우 중국 대륙을 구분 짓는 지형적 장애물들이 없어, 비교적 통일이 빠르게 진행되었으나, 유럽의 경우 복잡한 지형과 해안선으로 산발적 민족이 생겨났으며, 이는 곧 생존 경쟁으로 이어지다보니 총과 쇠의 발달이 우선적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여건으로대륙의 지리적, 환경적 차이가 현재의 문명 발달의 불균형, 침략과 전쟁의 결과로 귀결된 것이다. (이전에 쓴 독후감 읽고 썼으니 총균쇠 요약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재레미 다이아몬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은 평등하다"가 아닌가 싶다. 백인들이 민족적으로 우월한게 아냐. 그저 좋은 지리적 환경, 총과 쇠를 다루기에 적합한 환경에서 태어났을 뿐이야- 이렇게 말이다. 이는 롤스의 '차등적 평등'과 비슷하다.
시장사회에서 시민들은 기본 자유(시민적,정치적자유)를 평등하게 보장받고, 소득과 부의 분배는 자유시장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기회가 전혀 균등하지 않는 방식으로, 임의적으로 배분될 수 있다는 것이 롤스의 의견이다. 예를 들어 태어날 때부터 부자인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성대구조가 뛰어나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치인 사람이 있다. 그 누구도 "난 좋은 집안에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날거야. 응애-"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의 재능, 환경, 사회적 조건 모두 다 임의적, 즉 도덕적으로 자의적이란 것이다. 좋은 토양의 유라시아 대륙에서 농작을 경작하던 사람은 척박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경작하는 사람보다 좋은 결실을 갖고 잉여 농작물을 생산하는 것은 그저 운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롤스는 '차등적 평등'을 지향한다. 타고난 재능으로 벌어들인 것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돕자는 것이다. 애초에 뛰어난 능력을 타고날 자격이 있거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순수한 내 노력이다? 아무리 똑같은 시간으로 노력해도 사람의 타고난 능력 앞에서는 그 차이가 갈린다. 예를 들어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의 경우, 물로 그도 수많은 노력 끝에 현재의 농구실력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연습하고 노력을 했어도, 그의 타고난 재능 앞에서는 실력의 차이를 벌린다. 또한 가정의 재력이라든지 주변 환경 여건이 받쳐줬기에, 그는 자신이 원하는 농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특정한 시기에 사회가 가치를 두는 자질 또한 도덕적 임의성이다. 예를들어 나는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어 코미디언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의 이 재능은 그저 무력하거나 광대 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운에 따른 요소들은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다.
둘의 의견을 합쳐볼까?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것은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환경의 차이, 즉 도덕적 자의성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평등하고,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나라는 그 우연적 요소로 벌어들인 것을 세계에 재분배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아이를 나의 일이라 생각하는 공동체적 마인드가 들어가면 더욱 좋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경기할 참가할 기회를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애초에 그 출발선이 다르다면 그 경기는 공정하다고 보기 힘들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만약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읽는다면 이렇게 들릴까?
"모든 사람에게 문명 발전의 기회를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애초에 그 지리적.환경적 차이가 다르다면, 그것은 불공정한 일이고 대륙의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다."
정말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좀 더 나은 환경의 사람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굽어보면 좋을텐데, 괜히 또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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