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 조각

산책, 운동 이야기

by ●◇● 2023. 9. 4.
반응형

 

  메론 한 조각에 목구멍이 팅팅 붓고 난생 처음 듣는 목소리가 나왔다. 단순히 낮다고 하기엔 괴상하고 괴랄하고 거칠고 답답하다. 감기 걸렸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에 화장실에서 입을 헹구고 밖에 나와 다시 말을 했다. 그래도 이상한 목소리에 아차 싶었다. 구강 알러지가 심하게 왔구나. 참외, 수박, 메론 등 일부 과일을 먹을 때 입안과 목구멍이 간질거리는데 이정도로 심하적이 없어서 방심했다. '이 메론은 미친놈이야!' 역대급으로 달고 맛있어서 미친놈이라 표현했는데, 내 목을 팅팅 붓게 만들 미친놈일 줄은 몰랐다.

 

  다행히 호흡 곤란까진 안와서 물을 삼키는데, 이미 고기배 술배가 차서 물이 안 넘어갔다. 산책 좀 다녀오겠다 말하니, 중간에 쓰러질까 걱정되어 두 명이 붙었다. 운동 좀 좋아하는 언니들. 마침 배가 불러서 걷고 싶었고, 오늘 할당 걸음수를 채우지못해서 걷고 싶었단다. 감사한 마음으로 산책에 나섰다. 

 

  인생 영화 중 하나인 <비포선라이즈>의 심야 버젼을 찍는 기분이었다. 비록 두 명이 아닌 세 명이고, 한 명은 목이 팅팅 부어 대화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강화도 강가와 도로 그 사이 어딘가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눴다. 비포 선라이즈 주인공들의 대화는 시시각각 변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하나로 쭉 이어 나갔다. 

 

  운동.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한 나, 발레와 풋살로 다져진 A와 살기 위해 5월부터 운동했다는 B의 이야기.(타자가 귀찮아서 언니는 생략) B는 헬스를 사랑했다. 몸과 정신 모두 운동을 통해 건강해지니 경배할 수 없다며, 운동으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말해줬다. 앓고 있던 지병으로 술을 끊고 운동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수치가 좋아지고 살이 빠지고 무엇보다 우울감이 사라졌다고 한다. 운동을 많이 못하더라도 약속한 횟수를 채우고, 그 하루를 나가는 것 자체가 스스로 대견하다고 한다. 실제로 운동을 하면 도파민과 엔돌핀이 분비되어 정신적으로 항우울제 효과를 지니기에 정신과 의사들이 밖에 나가 산책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 또한 우울할 때마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면 기분이 전환되어 B의 말에 공감했다. A도 이에 동의하며 본인은 바람을 맞으면서 뛰는 것 자체가 좋다고 러닝 크루를 추천했다.

 

  나는 독감 이후로 급격히 떨어진 체력과 부쩍 늘어난 살에 8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20대 초반에 헬스에 큰 재미를 못 느껴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성실하게 1주일에 3번 헬스장을 나가고 있다. 뭐랄까, 하루라도 안 나가면 그날 성실하게 안 산 기분이든달까. 힘들면 힘든대로 하루 쉬고 그 다음날 나가고, 약속이 있으면 최대한 피해서 약속을 더 안 만들고, 게임을 줄이고 저녁을 줄이고 먹는 것도 운동한게 아까워서 적당히 가리게 된다.

 

  마음가짐의 힘이랄까. A와 B모두 30대 직장인이라 "살기 위해 운동한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미용이 아니라 정말 살기 위해서. 건강하기 위해. 오래 사는 것보다 아프지 않기 위해. 병원비보다는 차라리 헬스비가 덜 든다는 철학으로 몸을 움직인다. 살다살다 내가 헬스를 다니고, PT를 끊고, 언니들과 운동의 효능에 대해 격하게 찬양할 줄 몰랐다. 

 

  목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45분의 산책은 건강 이야기로 유익했다.

 

*항상 글의 마무리가 어렵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목적이 없어서 그럴까.

반응형